
저희 어머니가 위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셨을 때, 제가 가장 고민했던 것이 바로 독감 예방접종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암환자는 면역이 약해서 예방접종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처음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나서 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면역이 떨어진 암환자일수록 독감 예방접종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암환자에게 독감예방접종이 더 필요한 이유
많은 분들이 암환자는 면역력이 약해서 예방접종을 맞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하십니다. 저도 어머니 치료 초기에 똑같이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의료진의 설명을 들어보니 정반대였습니다. 암환자는 항암 치료로 인해 호중구가 감소된 상태입니다. 여기서 호중구란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에 맞서 싸우는 백혈구의 일종으로, 우리 몸의 최전방 방어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호중구가 줄어든 상태에서 독감에 걸리면 일반인보다 훨씬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독감이 폐렴으로 진행되고, 심하면 패혈증까지 발전해서 입원 치료가 필요한 중증 감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출처: 대한감염학회).
제 경험상 어머니께서 독감 예방접종을 맞으신 후에도 특별한 부작용 없이 잘 지나가셨습니다. 독감 백신은 사백신이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사백신이란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아닌 재조합된 항원 성분만을 사용한 백신으로, 면역이 약한 환자에게도 안전하게 접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임산부나 6개월 이상 영유아도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안전성이 검증되어 있습니다.
항암치료 중 독감접종 적절한 시기
독감 예방접종을 맞아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럼 언제 맞아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저도 어머니 항암 스케줄을 보면서 접종 시기를 고민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항암 치료는 보통 3주 간격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암제를 투여하고 나면 약 10일에서 14일 사이에 호중구가 가장 많이 떨어집니다. 이 시기를 호중구 감소증 시기라고 하는데, 이때는 외부 요인 없이도 열이 나는 경우가 있어서 예방접종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안전한 접종 시기는 항암 치료 3주째, 즉 다음 항암 치료를 받기 3~4일 전입니다. 이 시기에는 호중구 수치가 다시 회복되어 정상 범위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이 시기에 맞추어 접종을 하셨고, 접종 후 미열이나 접종 부위 통증 같은 가벼운 증상이 있더라도 다음 항암 치료 전에 충분히 회복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만약 표적 치료나 항호르몬제를 복용 중이라면 호중구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을 때 언제든 접종하셔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항암 치료를 시작할 예정이라면 치료 시작 2주 전에 미리 접종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독감백신 효과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일반적으로 독감 예방접종을 맞으면 독감에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 예방접종을 맞고도 독감에 걸린 적이 여러 번 있어서 "맞을 필요가 있나?"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방접종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예방접종은 100% 감염을 막는 것이 아니라, 감염되더라도 중증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는 데 핵심 목적이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보면 접종을 한 그룹과 하지 않은 그룹을 비교했을 때, 접종한 그룹에서 중증 합병증 발생률이 현저히 낮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암환자의 경우 일반인보다 항체 형성률이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면역 체계 자체가 약해져 있어서 백신에 대한 반응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방어 효과만으로도 폐렴이나 패혈증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의학계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독감 백신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만을 예방한다는 것입니다. 아데노바이러스, RSV, 코로나바이러스 등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에 의한 감기까지 막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방접종을 맞았어도 다른 바이러스 감염으로 감기에 걸릴 수는 있습니다. 이런 점을 이해하고 나니 예방접종 후에도 기본적인 손 씻기, 마스크 착용 같은 위생 관리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암환자가 꼭 맞아야 할 다른 예방접종
독감 외에도 암환자에게 필요한 예방접종이 더 있습니다. 저도 어머니 치료 과정에서 하나씩 알아가면서 챙기게 되었습니다.
폐렴구균 예방접종은 폐렴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균인 폐렴구균 감염을 막아줍니다. 폐렴구균은 폐렴 외에도 수막염, 중이염 등을 일으킬 수 있어서 암환자에게는 특히 중요합니다. 폐렴구균 백신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15가 단백결합 백신과 23가 다당 백신입니다. 여기서 '가'란 백신이 방어할 수 있는 폐렴구균의 혈청형 개수를 의미합니다. 암환자는 이 두 가지 백신을 모두 맞는 것이 권장됩니다. 15가를 먼저 접종한 후 8주 뒤에 23가를 접종하면 됩니다. 일반인은 1년 간격이지만 암환자는 더 빨리 면역을 형성하기 위해 간격을 줄입니다. 만약 23가를 먼저 맞으셨다면 1년 후에 15가를 맞으시면 됩니다.
대상포진 예방접종도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대상포진 백신이 생백신이어서 암환자에게 금기였습니다. 생백신이란 약독화된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면역이 약한 환자는 오히려 그 백신으로 인해 질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22년부터 싱그릭스라는 사백신이 나오면서 암환자도 안전하게 접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상포진은 한번 걸리면 심한 통증과 후유증이 오래 남을 뿐만 아니라, 항암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환자분 중에도 대상포진 때문에 몇 주간 치료를 미루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싱그릭스는 2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하며, 비용은 두 번 합쳐서 약 50만 원 정도입니다. 한 번 맞으면 약 10년간 효과가 지속되므로, 장기적으로 보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도 독감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이 독감에 걸리면 환자에게 전염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족도 어머니 치료 기간 동안 모두 예방접종을 빠짐없이 챙겼습니다.
예방접종만으로 모든 감염을 막을 수는 없지만,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을 크게 낮춰줍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작은 예방 조치들이 모여서 안전하게 항암 치료를 완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암 치료 중이시거나 치료를 앞두신 분들, 그리고 가족분들께서는 담당 의료진과 상담하셔서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예방접종을 꼭 챙기시길 바랍니다.